독립기념관, 2월의 독립운동가 김규면 선생 선정
독립기념관, 2월의 독립운동가 김규면 선생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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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1.2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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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면 선생(1920년대.국가보훈처 제공)
김규면 선생(1920년대.국가보훈처 제공)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이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김규면 선생을 2018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김규면 선생은 1880년 함북 경흥에서 태어났다. 1900년 초 서울로 올라와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했으나, 함경도 출신들을 차별하는 일제의 정책으로 무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생업을 위해 이주한 원산에서 캐나다 출신 선교사 펜윅을 만나 기독교에 입교했다.

1907년 가족들과 중국 훈춘으로 망명해 대한기독교회 소속 목사로 만주와 연해주를 오가며 선교활동을 펼쳐 나가는 한편 이동휘ㆍ김성무 등과 함께 동림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했다.

1915년 대한기독교회가 일제의 종교탄압에 굴복하자 ‘대한성리교’를 만들었고, 1919년 3월 2일 대한성리교 교인들을 중심으로 대한신민단을 창설하는 한편, 1920년 대한신민단을 이끌고 봉오동전투에 참여하고 1921년에는 대한의용군사회 고문으로 임명되어 러시아 이만전투에 참전했다.

1922년 러시아 정부가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한인무장부대를 해산시키자 중국 상하이로 건너왔다. 1924년 4월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윤자영 등과 함께 상해청년동맹회를 조직하고 잡지 '한인청년'을 출판했다.

1924년 5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총장 대리로 임명되어 러시아 정부에 자금 지원 요청을 교섭하고 1925년 사회주의자동맹을 조직하여 독립운동 세력들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1927년 장제스가 사회주의자를 탄압하자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가 동양서적 판매원으로 일하며 연해주 지역 빨치산 위원회를 지원했으며 1933년 모스크바로 이주해 생활하다 1969년 향년 88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200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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